김주환의 책 <내면소통>에서 만나게 되는 마음근력에 관한 대목 정리해 봅니다.
나와의 소통 자기조절력, 타인과의 소통 대인관계력, 세상일과의 소통 자기동기력. 저자는 마음근력을 이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음근력이란
세 가지 범주
- 자기조절력
- 대인관계력
- 자기동기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세 가지 범주의 존재를 각기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강한 마음근력을 지닌다는 것은 세 가지 범주와 각각 좋은 관계를 맺고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가지 범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므로 이를 다루는 마음근력도 각기 다르다.
먼저 '나'를 잘 조절하고 다스리는 능력은 '자기조절력'이다. 그다음 '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은 '대인관계력'이다. 그리고 '그것', 즉 여러 가지 세상일을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서 열정을 갖고 해내는 능력은 '자기동기력'이다.
자기조절력이 중심근력
세 가지 마음근력은 세 가지 범주를 대상으로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나(I)가 하는 소통이기도 하다. 나(I)가 자기 자신과 잘 소통하는 것이 자기조절력이고, 나(I)가 타인과 잘 소통하는 것이 대인관계력이며, 나(I)가 세상일과 잘 소통하는 것이 자기동기력이다.
모두 '나(I)'에 관한 것이기에 세 가지 범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기조절력이다. 자기조절력이야말로 모든 마음근력의 핵심이다. 자기조절력이 타인에게 투사된 것이 대인관계력이고, 사물에 투사된 것이 자기동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근력이 강해야 삶이 행복하다
마음근력이 약한 사람은 자기와의 소통을 부정적으로 하기 쉽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나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내면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하게 되어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스스로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게 마련이다. 세 가지 범주와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나의 삶이 달라진다.
하이데거 살펴보기
인간은 '던져진 존재'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근력이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는 이론적 근거는 하이데거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이 세상에 휙 던져진 존재'다. 자신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 등장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그렇게 '던져진 존재(there Being)'가 곧 '현존재(Dasein)'이고 인간이다. 이러한 현존재의 기본적인 속성이 '세계내적존재'다.
세계는 다른 사람과 사물로 이루어진다.
세계'내적'존재라고 해서 현존재가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물이 물컵 안에 혹은 옷이 옷장 안에 있는 것처럼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계'내적'이라 함은 세계의 다른 존재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는 것이며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며 배려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세계내적존재'
나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존재들이 곧 나의 세계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며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세계다. 내가 배려하는 대상이 나의 세계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나의 세계가 아니다. 나는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동시에 이러한 소통을 통해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계를 끊임없이 구성하고 생산해 낸다.
이 세상은 나의 관심과 소통의 결과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한 '세계내적존재'는 결국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돌보는 존재'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관심을 갖고 돌보는(Sorge) 존재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배려(Fursorge)이고, 이는 대인관계력과 관련이 있다. 주변 사물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관심(Besorgen)이며 이는 자기동기력과 관련이 깊은 개념이다.
하이데거의 세 가지 통찰력 _꿰뚫어봄, 되돌아봄, 둘러봄
한편 하이데거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형태의 통찰력(Sicht=insight)이 요구된다고 본다.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해 세계적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통찰력을 '꿰뚫어봄(Durchsichtigkeit)'이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아 배려하고 이해하는 통찰력은 '되돌아봄(Rücksicht)'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바라보아 이해하는 통찰력은 '둘러봄(Umsicht)'이라고 한다.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자기조절력의 핵심이라면,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통찰력은 대인관계력의 핵심이다. 나아가 주변 사물을 폭넓게 '둘러보는' 통찰력은 자기동기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 살펴보기
사르트르 역시 존재의 기본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그도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사물 존재와 인간 존재를 구분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의식'이 없는 사물은 그 자체로 그저 존재하는 즉자(en-soi)존재이며, 이는 인간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반면에 의식을 지닌 인간은 대자(pour-soi)존재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지닌다고 본다. 즉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향하여 있다.
사르트르 또한 제3의 존재 양식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바로 대타(pour-autrui)존재다.
대타존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즉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존재가 바로 대타존재다.
사르트르의 개념을 빌려 마음근력 세 가지를 설명하자면, 대자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 자기조절력이고, 대타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 대인관계력이며, 즉자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 곧 자기동기력이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공통점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공통점은 인간 존재의 핵심을 타자와의 관계, 즉 소통으로 본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이 끊긴 상태가 곧 즉자존재이며, 이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살덩어리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야만 세계적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될 수 있다. 하이데거의 관점으로 사르트르의 개념을 풀어보면, 사물인 즉자존재가 곧 존재자이며, 인간인 대타존재가 곧 현존재다.
[Note] 현존재(Dasein)란 무엇인가 나(저자 김주환)는 'Dasein'을 '현존재'라 번역하는 관행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을 'Dasein'이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 존재' 혹은 그냥 '사람'이라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Dasein'을 '인간'이 아닌 '현존재'로 번역하는 순간 하이데거 철학은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편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은 '존재자(Seiende)'라 부른다. 즉 어떤 것이 존재(Sein)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인간 존재는 'Dasein'이고, 사물 존재는 'Seiende'라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Dasei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은 독일어의 '있다'라는 단어 'Sein'이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지 않고 쓰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사물이 있는 것'과 사람이 '있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인 사물의존재를 지칭하는 단어인 'Sein'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단어 'Dasein'을 만들어내 '인간의 있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어에는 이러한 불편이 없다. '있다'라는 말 이외에도 '계시다'라는 존칭어가 있으며, 이는 인간에 대해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인 사물은 '있는 존재지만, 인간은 '계시는 존재'라는 구분이 우리말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마디로 'Sein'은 사물이 있는' 것이고 'Dasein'은 인간이 '계시는' 것이다. 인간 존재인 'Dasein'의 핵심은 끊임없이 다른 인간과 그리고 세상과 관계 맺고 소통한다는 데 있다. 'Dasein'은 한마디로 소통하는 존재다. 소통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는 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이다. 인간 존재의 핵심이 소통에 있다는 것은 내면소통 이론의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
마르틴 부버 살펴보기
내가 대하는 대상에 따라서 '나'라는 존재의 성격이 규정된다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개념 역시 세 가지 마음근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존재의 성격은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사물에 대한 '나-그것(I-it)'과 사람에 대한 '나-너(I-thou)'
부버에 따르면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사물을 대하는 '나'와 사람을 대하는 '나'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기에 하나의 단어 '나(I)'로 표기하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부버는 '나'를 두 종류로 구분해서 부르자고 제안한다. 사물을 대하는 '나'는 '나-그것(I-it)'으로, 사람을 대하는 '나'는 '나-너(I-thou)'로 구분하자는 것이다.
내가 목이 말라서 물병을 집어 들 때 내 존재의 성격은 '나-그것(I-it)'이지만, 내가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내 존재의 성격은 '나-너(I-thou)'가 된다.
'나'라는 존재의 성격은 내가 어떠한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다시 말해, 나라는 고정적 실체가 우선 존재하고 그다음에 사물이나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기보다 내가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나라는 존재의 성격이 비로소 규정되는 것이다.
관계는 곧 소통, 진정한 대화가 중요하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소통을 한다는 뜻이다.
내가 진정한 '나-너 (I-thou)'가 되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즉 상대방을 '사람'으로서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소통이라는 행위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항상 상대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인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선행해야 한다. 따라서 대화는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우선시하는 지극히 윤리적인 행위다.
이기적인 인간은 대화 능력이 부족하다.
대화 능력을 키우려면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부터 길러야 한다. 소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형이 '대화'다.
대화는 상대방과 '함께하는' 하나의 '행위'다.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관계에서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부버는 너와 내가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존재로 고양되는 것을 진정한 '대화적 순간(dialogic moments)'이라고 부른다. 복잡한 얘기를 간단하게 하자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야 나도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소통의 대상으로 존중하지 않는 한 나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엘리베이터가 사람들로 꽉 차 있다고 하자. 막 문이 닫히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한쪽 발을 들여놓는다. 그때 정원 초과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사람이 내리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은 이미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도록 덜어내야 할 그저 무거운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일 뿐이다.
이때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은 '나-너'로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그것'으로 대하는 것이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서로 부대끼는 사람들 역시 서로에게 '나-너'의 존재라기보다는 '나-그것'의 존재다.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살덩어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머릿수를 돈으로만 환산하는 극장 주인 역시 관객을 '나-그것'으로 대하는 것이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을 상
대한다고 해서 저절로 '나-너'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소통과 대화의 상대로 존중할 때만 '나-너'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한편, 사물을 대할 때도 우리는 '나-너'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늘 함께했던 친구처럼
자라난 뜰 앞의 참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친근한 마음으로 말을 건넨다면 그 순간 나는 '너'의 존재로서 그 참나무를 대하는 것이다.
내면소통의 주체는 '나-나(I-me)'의 존재
부버의 '나-너'와 '나-그것'의 개념에 나는 하나의 개념을 더 추가하고자 한다.
내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마주할 때의 나는 '나-너'의 존재도 '나-그것'의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나(I-me)'의 존재다. '나-나'는 내가 나를 바라보고 나와 이야기하고 나를 관조할 때의 나의 존재 방식이다. 앞으로 살펴볼 '내면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나나'다.
이렇게 확장된 부버의 개념에 따라 세 가지 마음근력을 살펴보자면, '나-나(I-me)'의 관계를 잘 맺고 소통하는 능력이 자기조절력이다. 건강한 '나-너 (I-thou)'의 관계를 잘 맺는 능력이 대인관계력이고, 생산적이고도 효율적인 '나- 그것(I-it)'의 관계를 맺는 능력이 자기동기력이다.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나 사르트르의 대타존재, 부버의 나-너 존재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모두 인간 존재의 핵심을 다른 사람과의 소통으로 본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소통해야만 한다. 세 가지 마음근력은 자기와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 세상일과의 소통을 잘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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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김주환의 <내면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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