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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하샨티

선의 공안(禪의 公案)과 화두(話頭)

by 소리하 2023. 3. 13.

책을 읽다 스치듯 지나가는 '선의 공안'이라는 단어에 걸렸다.

선의 공안? 무슨 말이지? 검색해 보아도 선뜻 잡히지 않는다. 좀 더 찾아보자 선불교 용어로 '공안(公案)'이라는 말이 있고, 이는 익히 알고 있던 화두(話頭)와 같은 뜻임을 알게 되었다. 잘 정리된 글이 있어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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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화계사 ‘화두공안’


공안(公案)이란 관공서의 서류, 공문서(公文書)를 뜻한다. 옛날에 중국에서 공문서를 복사(複寫)할 때에는, 관인(官印)을 원본(原本)과 사본(寫本)에 반씩 찍어서 뒤에 사본이 진짜임을 증명할 필요가 생기면 그것을 다시 맞춰 보았다.
선가(禪家)에서도 공안(公案, 話頭)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용했다. 즉 한 가지 공안의 질문에 대해 제자가 이해한 내용과 스승이 이해한 내용을 맞추어 보아서 양자(兩者)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을 일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다. 부처님 당시에는 화두나 공안이라는 것이 없었으며 부처님은 혼자 깨치셨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은 무상하며,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으로 가는 길도 가르치셨다.
그때의 가르침은 글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서로 토론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명상으로 수행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네 차례에 걸쳐 큰 모임을 마련했다. 성경을 예수께서 쓰신 것이 아닌 것처럼, 경전도 부처님께서 쓰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말로 씌었다. 제자들은 여러 해 동안 부처님께서 실제로 가르친 내용을 토론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불교를 연구하는 일이 수행(修行)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서 여러 종파(宗派)가 논쟁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약 천 오백 년 전에 달마 대사가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갔다. 불교를 전래된 지 삼백 년이 지난 즈음이었다. 달마 대사는, 사람들이 불교의 정법(正法)을 알지 못한 채 불교를 단순히 자신들의 소원을 비는 데만 이용하는 것을 보고 올바른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 달마 대사가 중국 남쪽에 있는 양나라 무제(武帝)를 방문했을 때 생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양 무제는 자신을 방문한 달마 대사에게, 자신이 무수한 절을 짓고, 숱한 경전을 번역해서 출판하고, 수많은 스님들에게 공양(供養)하였다고 하고 달마 대사에게 "저의 공덕이 얼마나 큽니까?" 하자, 달마 대사는 "공덕이 전혀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무제가 다시 "성스러운 진리의 가장 숭고한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성스럽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했다. 이에 무제가 당황해서, "마주 선 당신은 누구시오?" 하였다. 달마 대사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고, 그곳을 떠나 북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유명한 절이 많았지만 달마 대사는 소림사 근처에 있는 동국 속에서 아홉 해 동안을 면벽좌선(面壁坐禪)했다.
어느 날 혜가스님이 찾아와서 법을 구하는데 달마 대사는 "내가 말한다 해도 너는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했다. 혜가 스님은 팔을 잘라 신심을 보이며 "선사님,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달마 대사가 "편하게 해줄 터이니 네 마음을 이리 내놓아라." 했더니, 혜가스님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그러자 달마 대사는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했다.
혜가스님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견성(見性)해서 이조 대사(二祖 大師)가 되었다. 이것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룬 최초의 선(禪)이다.

 

이렇게 이어 온 선은 육조(六朝) 혜능(慧能)대사 때에 두 번째 전환기를 맞았다. 육조 대사는 "원인(因)을 만들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결과(果)도 없을 것이니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는 이 간단한 가르침으로 유명해졌다.

 

어느 때 두 승려가, 공중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깃발이 움직인다.", "아니다, 바람이 움직인다." 하며 논쟁을 벌였는데 이를 들은 육조 대사는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그대들의 마음이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무엇이 움직이는가?" 하는 새로운 물음이 선승(禪僧)들의 마음을 자극해서, 이런 방식의 물음이 많이 생겨났다. "무엇이 삶인가? 무엇이 죽음인가? 무엇이 마음인가?" 이런 문제들이 모두 공안이 되어서 참구하는 이들이 수행하는 데 활용되었다.

 

한 제자가 육조 대사를 찾아왔다.
대사는 "어디에서 왔느냐? 무슨 물건이 이리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제자는 "모릅니다."하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바로 '나는 무엇인가? 이 뭣고? 하는 공안의 유래이며, 부처님께서 여섯 해 동안 수행하시며 지녔던 의문과 같은 것이다.

 

부처님과 달마대사, 육조대사가 모두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모른다."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화두 참선의 시초이다. 그 뒤에 여러 종파와 종단이 생기고 그에 따라 수없이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

 

어느 승려가 팔조대사(八祖大師) 마조선사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마음이 부처고, 부처가 마음이니라."라고 대답했다. 얼마 뒤에 그 승려가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선사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만 해도 가르치는 방법이 단순했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방법이 생겨나고 발전해서 선(禪)에 관한 이야기로 논쟁을 벌이는 '법거량'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래서 저 유명한 두 공안집(公案集),『벽암록(碧巖錄)』과 『무문관(武門關)』이 등장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선(禪)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되어서 참선은 더욱더 일상생활과 멀리 동떨어지게 되었다. "나무와 닭이 울고, 돌범이 공중에서 날아다닌다.". "토끼 뿔을 보았느냐?"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들로 선(禪)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되었다.

 

문자 자체에는 뜻이 없기 때문에 이런 공안에서는 항상 숨은 뜻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불교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봄이 오면 풀이 절로 자란다."라고 대답하는 식의, 근본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선문답(禪問答)을 통하여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 모든 질문과 대답은 오직 하나의 진리만을 가리켰다.

 

과거의 스님들은 산 속에서 평생 수행하였으므로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족했다. 그들이 사회와 관계를 맺지 않았으므로 진리를 행동으로 구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가정과 직장에서 바쁘게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일상생활과 선(禪)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진정한 자아를 깨달으려면 옳게 살아야만 한다.
모든 것을 놓아 버려라. 아무 것도 만들지 않고 찰나 찰나 올바른 상황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올바르게 진리를 수용해야 한다. 오직 할 뿐. 이것을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를 믿지 못한다면 더욱더 '할 뿐'을 지키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올바른 깨달음과 진리의 올바른 수용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선의 혁명이다.

 

예전의 공안 수행은 수행자의 깨달음을 확인하는 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기 위해 공안을 이용한다. 이것이 과거의 공안 이용 방법과 다른 것이다. 대답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공안을 일상 생활에 이용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관음(觀音)은 소리를 지각(知覺)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아를 지각한다는 뜻이며, 모든 생명들의 고통 소리를 지각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 고통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이것이 보살의 길이다.

 

 

남을 돕는 일은 우리의 수행이며 의무이다. 올바른 수행은 깨달음을 얻을 뿐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수행할 의무를 찾는 일이다.
그러므로 공안은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옳은 답을 찾는 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자기의 견해를 떨쳐 버리면 마음이 허공처럼 맑아져서 어떤 상황이라도 신중하게 숙고해서 올바르고 치밀하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공안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 선사가 "만 가지 물음이 모두 한 물음"이라고 말했다. 한 물음으로 수행하는 것은 '모를 뿐'인 마음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저 할 뿐.

 

공안에만 집착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은 '선병(禪病)'이라는 큰 병이다.
공안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손가락에만 집착하면 달을 보지 못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목표이다. 목표가 바로 '모를 뿐'이다.

 

옛날에는 산 속으로 들어가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러 해 동안을 오직 공안 하나로 정진하는 것이 수행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수행하는 방식은 공안을 일상생활에 적용해서 올바르게 진리를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할 때는 그냥 그것만을 하라. 그냥 그것만을 할 때 아무 생각이 없게 되고, 주체도 객체도 없어진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공안 수행이다.
매일의 찰나 찰나가 바로 우리의 공안이다. 이것은 우리의 선 혁명이다.

 

 

스님이 좌선에 들어 있다

 

네이버 검색 ‘불교 공안’


공안이란 공부(公府)의 안독(案牘)이란 뜻이다.
안독은 정부가 정한 법도이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준수해야 하며 만일 이것을 어기면 처벌하는 것이 공부의 안독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종의 조사들이 정한 법문을 공안이라 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통하는 불변의 법문으로서 때와 근기(根機)에 따라 자유자재로 제시하는 공법(公法)이다. 그래서 일명 칙(則)이라 한다. 참선자들을 위한 공정(公定)한 법칙, 즉 선지식들이 인정한 이법이란 의미에서 공(公)이고, 그 이법에 따라 정진하면 반드시 선의 대요를 체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안(案)이라 했다.

 

<규봉광록산방야화(圭峰廣錄山房夜話)>에서는 '공이란 고덕(古德)이 도를 행한 흔적으로서 천하의 도를 보이는 지극한 이법이고, 안이란 고덕이 보인 진리를 기록한 올바른 글월이다.'라고 했다.

 

공안이 부처님 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후대에 부처님이 '염화'란 공안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사실은 달마대사 때부터 사용되었다. 즉 달마가 양무제와 나눈 대화가 공안으로 구성되어 있고, 2조 혜가선사와의 문답도 공안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황벽선사때부터 공인되었다.

 

공안은 문답이 특징이다.
문답을 통해서 지적인 것.논리적인 것. 설명. 해석. 교훈 등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선종의 종지는 실제로 수행하는 것이다. 부질없는 이론이나 어떤 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수행을 통해 자기의 자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안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과 방법에 불과하다.

 

 

'깨침'을 열려면 공안을 이용하여 직접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안에는 1,700의 공안이 있다. 이 숫자는 <경덕전등록>에 1,701명의 수행 이력을 수록했기 때문에 유래된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공안이라고 볼수 있다. 공안은 '깨침'을 위한 의문인데 우리의 일상생활이 의문이기 때문이다. 공안은 일명 화두(話頭)라 한다. 화두란 말은 '말머리'란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공안보다 화두란 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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